[민중의소리] 고객도 여행지 주민도 직원도 모두 행복한 ‘세상에없는여행’ (20.10.27)

세상에없는세상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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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위 구름을 가르며 지나가는 비행기가 안 보인다. 벌써 8개월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여행업계가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600여 여행사가 문을 닫았다. 이처럼 여행사들이 줄폐업하는 가운데, 기존의 ‘공정’ 가치를 지키며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여행사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여행상품이 모두 중단됐어요. 대신 코로나 ‘덕분에’ 미루던 신사업들이 탄력받게 됐죠.” 김정식(45) ‘세상에없는여행’ 대표를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11년차 고등학교 교사에서 여행사 대표로


김 대표는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었다. 그는 방학마다 학생들과 해외 봉사활동을 다녔다. 2013년 12월도 학생들과 함께 인도로 해외봉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지난 2013년 12월 인도 북부 라다크를 여행 중인 김정식 대표.ⓒ세상에없는여행 


인도 카슈미르주 라다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2층 침대를 함께 쓰게 된 베트남 친구 ‘끼엠’과 서툰 영어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됐다. 끼엠은 베트남 공정여행연합(RTC·Responsible Travel Club) 대표로, 공정여행에 관심을 보이는 김 대표에게 유럽 사례를 들려줬다. 공정여행이 거창한 게 아니었다.


“유럽 사례를 듣다 보니, 공정여행은 무겁고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여행하는 3박4일, 5박6일 동안 하루라도 그 여행지에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면, 하루가 아닌 반나절이라도 사회적 기업을 방문하면서 지역 경제에 선순환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공정여행이고 책임여행이라는 거예요.” 김 대표는 해외에서는 공정여행보다는 책임여행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휴직계를 제출하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10개월간 끼엠이 해오던 공정여행을 직접 체험하고,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렇게 ‘전지훈련’을 받은 김 대표는 2014년 말 학교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나섰다.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단번에 그만둔 그만의 이유가 또 있었다.


“한 직업을 평생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10년씩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라 생각해요. 정말 많아 봐야 네다섯 번이잖아요. 교사로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내다보면서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죠.”


김 대표는 2015년 6월 ‘베트남스토리’로 창업해 그해 11월 세상에없는여행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먼저 ‘불공정여행’을 하지 않을 것을 추구했다.


한국 여행사들의 동남아시아 여행상품은 대부분 항공권을 포함한 가격이 항공권보다 싼 경우가 많다. 여행사들이 수익을 남기려면, 결국 저렴한 가격에 고객을 모은 다음 현지에 도착해서 쇼핑을 하게 하고 마사지 등 추가 옵션을 선택하게 한다. 자신들과 계약된 곳을 소개하면서 10~20%의 중간 수수료를 페이백으로 받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악순환을 문제 삼았다. 기존 여행상품보다는 비싸지만 ‘정상가’를 받고 강제적인 쇼핑이나 옵션을 없앴다. “페이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여행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다


세상에없는여행은 베트남 여행으로 얻은 수익으로 베트남 전쟁 피해 마을 학교 학생들을 위한 도서를 구매해 전달했다.ⓒ세상에없는여행 


현지에 도움 되는 경제 선순환 구조도 중시했다.


“2015년 유엔 보고서를 보면 외국인들이 동남아에 가서 4.8%밖에 현지 경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해요. 100만원을 쓰면 5만원 정도 남기는 거죠. 2018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누적 여행자가 2000년 이후 17년간 20억 가까이 증가했어요. 그런데 그간 동남아 여행지 주민들의 삶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이유죠.”


세상에없는여행은 최소한 20% 이상을 지역 경제에 기여하도록 설계한다. 여행자들의 선택을 존중하되, 가급적 글로벌 자본으로 운영하는 호텔이나 식당보다는 현지 로컬에서 운영하는 곳을 추천하는 식이다.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한 뒤 직접 출장 가서 잠도 자보고 먹어도 보고 마사지도 받아본다.


여행을 통해 생긴 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 베트남 여행을 통해 얻은 이익을 베트남 전쟁으로 피해 입은 마을을 지원한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다 보니 질병에 자주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세식 화장실을 짓는 사업을 진행했다. 베트남 내 사회적 차별을 받는 소수민족이 다니는 학교에 교사나 교육 장비를 투입하기도 한다. 국내에선 결혼 이주민 자녀들 중 국적 문제로 교육권이 보장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그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매년 천만원씩 후원하고, 아이들과 놀이공원·수족관 등을 함께 가기도 한다.


세상에없는여행은 도심과 멀리 떨어져 정보격차 문제를 겪는 베트남 소수민족 마을 초등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했다.ⓒ세상에없는여행 



코로나19로 친환경 사업을 시작하다 


회사는 창업한 지 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하며 승승장구했다. 4년간 거래액이 점점 늘더니 지난해엔 10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목표는 150억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과 함께 완전히 막혀버렸다. 김 대표는 직원 20명 중 4명만 담당하던 ‘친환경 프로젝트’ 신사업에 모든 직원이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프로젝트는 여행자에게 비행용 슬리퍼 등을 기념품으로 나눠주는데 결국 한번 쓰고 버려지는 점에서 환경을 덜 해치자는 회사 가치와 충돌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기념품을 친환경으로 직접 제작해보자는 거였다.


친환경 몰 ‘자연상점’의 온라인 편집샵을 지난달 오픈했다. 연말엔 은평구 혁신파크에 오프라인 매장을 연다. ‘예쁜 쓰레기’가 아닌,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문화를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또 플라스틱 등 폐자원을 업사이클링해 가방과 캠핑용 텐트, 해먹 등을 제작하는 ‘프로젝트 1907’을 11월에, 자연분해되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온리에코’를 12월에 런칭할 예정이다.


공정여행을 시작으로 2018년 공정무역으로 확장, 지금은 친환경 제품에 집중하면서 혁신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쓸모 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해 더불어 행복한,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해 도전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내달 중엔 법인명을 ‘세상에없는세상’으로 바꿀 예정이다.



김정식 세상에없는여행 대표.ⓒ세상에없는여행




북유럽 부럽지 않은 직원 복지제도


직원들의 복지혜택도 눈에 띈다. 주 4.5일 근무, 매년 수익의 1%를 전직원에게 지급, 3년 근무마다 30일의 유급 안식 휴가 등 외국에나 있을법한 복지제도를 지난 5년간 꾸준히 운영해왔다.


김 대표는 ‘개념 있는 회사’, ‘출근이 설레는 회사’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한 달, 일 년을 내다보면 새로운 리프레시가 기다리고 있는 회사 말이다.


김 대표는 “스무가지의 복지제도에 연간 8천만원 정도가 든다. 그런데 그것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면 진행하지 못하는 거다. 사실 대표랑 주주들만 좀 더 양보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다”며 발상을 전환시켰다.


이어 “제가 성인군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직원들이 불쾌하고 기분이 안 좋은데 어떻게 행복한 여행상품이 나올 수 있겠나. 직원들이 행복해야 여행상품 서비스에도 행복함이 담기기 마련이고 또 그 상품을 만나는 여행자들도 행복해진다. 결국 회사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에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스타트업도 이렇게 운영해도 회사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회사들이 ‘저 회사는 저렇게 하네’라고 하면서 하나라도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으로 참 의미 있는 일이죠.”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최대 10년만 다닐 것을 적극 제안한다. 그 뒤엔 나가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라고 부추긴다. 직원이 100명, 1,000명 되는 것보다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를 더 많이 양성하는 게 바람이자 목표다.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저희는 회계 자료부터 모든 회사 소스를 오픈해요. 인터넷망에서 누구나 다 볼 수 있죠. 그런만큼 이 회사에 들어와서 최소 5년 이상 일하면 창업 못할 이유가 없어요. 같은 업종이든 다른 업종이든 각자 개념 있는 회사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겠죠. 그러한 씨앗이 사회 곳곳에 퍼지길 기대해요. 창업하는 또 다른 큰 행복인 것 같아요.”